전길남 박사




1970년대 중반 한국은 겨우 컬러TV을 만들수 있는 수준이었고 컴퓨터를 꿈도 못꾸는 기술이였다. 정부에서는 컴퓨터 관련 연구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979년 ARPANET의 책임자였던 레너드 클라인락 교수 밑에서 공부했던 전길남 박사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여 전자기술연구소 부장을 맡게된다. 전길남 박사가 처음 맡은 역할은 수출 가능한 컴퓨터 개발이었다. 하지만 네트워크 기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전길남 박사는 한국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면 네트워크 기술 연구가 더 효과적일 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안되는 네트워크 기술을 누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길남 박사는 생각이 확고했다.


1982년 5월 15일 구미 전자기술연구소(VAX 11/780) --(1200bps)-- 서울대학교(PDP 11)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전산망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2번째 인터넷 구축을 한것이다.


그 후 미국 전산망과 연결하려했으나 ARPANET이 군사기술이여서 미국과 동맹맺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몇몇 국가들만 사용했고 그런 이유로인해 라우터[각주:1]라는 핵심장비를 한국에 판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남길 박사는 이 라우터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하여 미국과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 미국과의 연결은 1986년 미국 과학재단에서는 폐쇄적이었던 인터넷망을 세계에 공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아시아 주변국에서는 전남길 박사를 통해 기술을 전수 받고 인터넷을 보급한다.


1994년 일반인도 코넷을 통해서 인터넷망을 사용할수있게 되고


20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ISOC(인터넷 소사이어티)의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려졌다. 여기엔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토발즈, WWW를 만든 팀버너스리 등과 같이 전 세계 인터넷 형성에 기여한 개척자 30명이 올라와있다. 


2014년에는 아프리카 프로젝트(아프리카의 인터넷 전반 문제에 대한 프로젝트) 국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특이사항으로 이분 뛰어난 산악인이기도하다. 

알프스의 3대 북벽을 모두 등반해서 국민훈장 기린장을 수여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인생

1943년 오사카 출생

1965년 오사카 대학교 전자공학 학사
196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
1974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대학원 컴퓨터공학 박사



#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에서 우리나라가 IT 강대국이 될수있게 기반을 만든 멋진 사람이다.

정말 멋있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1. 여기서 라우터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비로, 오늘날에서 쉽게 보이는 공유기가 이 역할을 한다. [본문으로]